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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 2008/07/19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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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중에는 생각밖에 할 게 없는 시간이 가끔 생긴다. 내가 글재주가 있었더라면 이럴 때마다 튀어나온 공상의 쪼가리들을 모아 소설이나 드라마 대본을 한 편 썼을 것이다. 사실 나는 돌려서 표현하는 이런 문학적인 재주는 없다. 진지하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멋있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힌 지금으로선 저런 재주를 키워볼 마음도 없다. 어릴 적에야 문학적인 허영심에 해보고 싶어했지만 이젠 평생을 가도 내가 소설을 쓰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박노자를 읽고 보니 고종석이 밋밋하게 느껴지는 것도 진지와 직설에 더 가치를 두는 내 성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소설이나 드라마 대본을 쓰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그 내용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바뀌고 있다. 완성은커녕 시작할 리도 없는 글짓기지만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중학교 때 쓰고 싶었던 소설은 초등학교 때 자신을 학대하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것을 완전범죄로 만든 남자가 결국 그 사실을 알게 된 동생에게 죽는다는 하드보일드한 이야기였다. 중학교때까지 이걸로 만화로도 그렸었는데 어느 순간 다 버려서 지금은 없다. 정신이 사라졌는데 물질이 남아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쓰고 싶었던 소설은 고아 남매를 후원하여 훌륭한 성인으로 키우는 학교 선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인공 이름도 아직 기억이 나는데 고아 소녀 이름은 성효진이었고,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이름은 안승민이었다. 대학교에서 '박효진'과 '안현정'을(성까지 부르는 건 내가 기분 나쁠 때 말투라고 누가 그랬던 것 같지만, 여기서는 비교를 위해 어쩔 수 없다) 만났을 때 처음부터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이들의 성격이 좋았던 것이 첫번째 이유겠지만 내 개인적으로 애착이 있는 있는 이름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때 쓰고 싶었던 소설은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여자애가 남자애를 찾아 같은 대학에 온다는 이야기였는데 결국 내가 크게 점수를 주지 않았던 '연애소설'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내용이었다. 이 내용은 돌림소설 때 한번 써보려고 했으나 역시나 미흡한 글재주 덕에 엉망이 되고 말았다. 언젠가 이걸 본 현정이가 여주인공이 딱 효진이라고 했었다. 물론 그것은 실제 글 내용과 상관없이 나를 놀리려고 했던 말일 것이다.
졸업하고 나서 쓰고 싶었던 소설 중 하나는 애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학원'선생과 그의 여자후배 '학교'선생 이야기였는데, 노파심에 말해두자면 현정이가 붙기 전에 생각한 이야기다. 학교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많은데, 애들이 학교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원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는 것 같아 한번 써보고 싶었지만, 글쓰기는 재미있는 것만큼이나 귀찮은 일이다. 완성해도 그렇겠지만 그것이 완성하기 전엔 더욱더 별 가치가 없다는 점에서 나는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요즘 쓰고 싶은 소설이 있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시덥잖은 공상을 죽 써본 것이다. 진지한 이야기가 좋겠다고 생각하여 한참을(그래봤자 버스에서 몇 번) 뭐가 좋을까 고민해서 내린 결론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과연 나는 나의 잘못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어떤 남자가 잠에서 깨어난다. 아무도 없는 곳이다. 그는 다시 평소와 같이 일상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일상이 그를 거부한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국가적으로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들에게 쫓기게 되고, 결국 자신이 살인 누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을 도와주는 친구와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던 그는 문득 자신의 기억에서 몇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살인 누명은 누명이 아니라 정말 자신이 저지른 것임을 알게 된다. 물론 죽인 것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자신이 죽인 것이 분명하다는 것은 알게 된다. 실수가 아닌 계획된 잔인한 살인 말이다. 결국 그는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친구에게서마저 도망치기 시작하고, 기억도 나지 않는 자신의 죄에 대해 죄값을 치러야 할까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한다.
그가 내릴 결론은 사실 내가 아직 내리지 못했다. 인간은 과연 자신의 행동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평소와 똑같이 자고 일어났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살인을 했다면 벌을 받아야 할까? 범죄를 저지른 '나'는 과연 나일까? 같은 '나'가 아니라면 어쩌다 범죄자와 몸만 같이 붙어 있는 '나'는 처벌받기엔 좀 억울하지 않을까? 나는 이 상상을 하면서 '진짜 억울하겠다~'라고 생각했으나 그야 모를 일이다.
반대로 보면 인간은 역사적인 존재라고 한다. 과거의 내가 모여 현재의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경험, 기쁨, 슬픔, 즐거움, 노여움, 부끄러움, 거기에 망각한 기억과 그 흔적까지 모두 모아야 '나'가 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와 큰 차이를 보이는 어떤 과거의 나라고 하더라도 내가 역사적인 존재인 이상 과거의 잘못에 대해 사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일본의 미친 짓을 보고 있자면, 사실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더 적절해보이기는 하지만.
써놓고 나니 사족이 몸통보다 긴 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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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 | 2008/04/18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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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리메이크작 하얀거탑이 시기적으로 늦게 만들어져 어느 정도 더 세련되었다고 치더라도, 그 음악과 영상 등 모든 면에서 일본판보다 우위에 있는데도 이런 말이 나오는 데에는 작품 이외에 다른 무언가가 평가에 개입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덕학원 출근 첫 주에 충남대 재학생인 과학 선생과 이야기를 하다가 일본 드라마 이야기가 나왔다. '눈물이 주룩주룩'이라는 영화가 개판이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일드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일본 3대 신파 이야기를 하다 '1리터의 눈물,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태양의 노래'를 언급했는데 그 중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평하며 과학 선생이 '다 봤는데 세중사는 책이 제일 낫고, 영화가 그 다음이고, 드라마는 쓰레기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나 내 주위 사람들의 평과는 전혀 반대였다. 물론 나도 다 봤다. 책은 읽다 재미없어서 집어던졌고, 영화는 뭔 소린지 이해할 수 없이 주인공이 환상인지 환각인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분위기라면, 드라마는 만남부터 죽음까지 절절하게 공감이 되는 작품이었다. 사실 영화같은 짧은 호흡에 만남에서부터 죽음까지 녹이기란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차태현 송혜교 주연의 파랑주의보를 만든다고 했을 때도 주연배우들의 부족함과 상관없이 망할 거라고 짐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김아중이 미녀는 괴로워에서 부른 아베 마리아의 원곡도 얼마 전에 라디오에서 듣게 되었다. 힘있게 쏟아져 나오는 김아중의 마리아와는 달리 딱히 신이 나지도, 감동이 되지도 않는 두루뭉술한 곡이었다. 물론 부드러운 멜로디는 좋았지만. 평소에 미녀는 괴로워 관련 글에서 원곡이 훨씬 낫다는 말을 듣고 사실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었던 차라 실망감이 컸다. 원곡보다 김아중이 부른 곡이 나았다. 순후가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박효신이 부른 눈의 꽃을 이야기하다 나카시마 미카의 원곡이 훨씬 대단하다며 들으면 아마 전율이 일 거라고 해서 들어봤으나 내 귀가 무딘 탓도 있지만, 나한텐 그게 그거였다.(물론 실제로 원작이 나은 것도 있는데 그런 건 대부분 표절시비가 붙은 것들이다. 파판 동영상을 표절한 아이비의 뮤비 관련해서는 확실히 파판쪽이 낫다.)
넷상에는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들이 떠돈다. 그 정보의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그것을 봤던 사람은 그것을 보지 못한 사람보다 스스로를 우월하게 여긴다. 과학선생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책이 가장 낫고 드라마가 가장 허접하다고 한 것은, 책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접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네가 본 것보다 네가 아직 안 본(그리고 나는 본) 이것이 훨씬 더 대단하다(그러므로 내가 너보다 낫다)'라고 자랑하고픈 심리인 것이다.
이런 심리는 특히나 넷상에서 심하다. 이순신의 전법이 세계 몇몇 나라의 해군사관학교에서 교재로 쓰인다는 헛소문부터, 차범근이 마테우스에게 들었다는 엄청난 찬양, 지금의 중국땅은 다 내 땅이라는 환단고기까지, 거짓정보들을 가진 사람들은 그 정보가 거짓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게 진짜다'라고 자랑한다.
하얀 거탑, 한국판이 백배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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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와 오늘 하루] | 2007/09/07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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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몇 안되는 배우 중 하나인 서지혜가 나온다길래 봤는데, 역시나 괜찮은 드라마였다. 서지혜의 한복 맵시도 신돈때의 화려함은 없어도 단정하니 보기 좋았다.
예전에 고전시가론인가를 김남순 교수님께 들을 때, 문학부에서 글맘제를 맞아 문학제를 했는데 그때 윤영이와 02학번애들 주도로 서동요 등을 패러디한 촌극을 선보였었다. 사실 주가 되기로 했던 것은 내 주도의 문학 비평이었지만 작품 선정도 좋지 못했고, 내용도 뻔했던 데다, 당일에는 음향쪽에 문제까지 생겨서 엉망이 되었는데, 다행히 촌극이 좋은 평을 받아서 전체적으로 평균작을 냈던 것 같다. 그때 그 촌극을 보신 김남순 교수님이 다음 수업시간에 아주 신이 나셔서 우리 고전을 저렇게 계속 재해석해줘야 된다고 하셨었다. 나는 사실 고전을 진지하게 마주 대하지 않고 패러디만 하다가는 너무 가볍게 다루어서 자칫 고전만의 향기를 잃지 않을까 싶었지만, 쾌걸 춘향을 비롯해서 이번의 향단전까지 고전을 신선하게 패러디해낸 작품들을 보면 패러디도 훌륭한 창작의 방법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춘향이 신분상승을 위해 이몽룡을 노린다는 것은 사실 나도 대학교 1학년때 독후감에 썼던 내용이었다. 그때는 강남 술집 여성들이 재벌 2세를 낚아채기 위해 몸을 투자한다는 식으로 썼었는데, 당시에 사람들이 '그건 오버지. 전통적인 훌륭한 여인상을 그렇게 속물로 보는 건 심하다'라고 했었다. 지금 저런 내용을 보니 내가 영 미친 소리를 했던 건 아닌 것 같아 나름대로 마음이 놓인다.
한계가 보이기도 한다. 석호필의 등장은 물론 아주 유쾌해서 나는 큭큭대면서 봤지만, 사실 이렇게 지금 유행하는 요소들이 패러디에 녹아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더라도 만약 10년후에 이 드라마를 보면서 똑같이 웃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즉 네멋이나 부활처럼 두번세번 봐도 감동할 정도로 오래오래 향기가 남는 것이 아니라 개그콘서트나 연예인들 나와서 낄낄대고 웃는 다른 프로들처럼 그 효용이 순간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특히나 요즘 사극들이 퓨전을 표방하면서 고증은 내팽개지고 헐리웃 영화를 베껴쓰며 막나가는 상황이라, 재미있으면서도 진지한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이 더욱 필요해보인다.
향단전과 같은 고전을 재해석한 코믹 장르의 드라마들이 신호탄이 되어 고전을 토대로 상상력을 발휘한 오랜 감동을 남기는 작품도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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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와 오늘 하루] | 2007/08/09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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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 때문에 손예진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커피 프린스 덕분에 윤은혜를 다시 보게 되는 것 같다.
애초의 예상
각종 단막극에서 연기력을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은 이선균과 코믹한 역으로 자주 봤지만 일단 연기력이 중간 이상인 공유가 나오기 때문에 남자 배우쪽은 탄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 쪽은 방학특선 궁으로 떠서 원현 스님 덕에 포도밭에서 평균을 갔던 가수 출신 윤은혜, 역시 가수 출신이고 생방송 노래 프로에서 라이브하다 가사 까먹어서 황당하게 했으며 나는 달린다에서 기가 막힌 연기력으로 나를 황당하게 했던 채정안. 이건 뭐 남자쪽과 여자쪽이 거의 기대치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상황이었다. 개인적으로 이선균은 감우성, 엄태웅과 동급이라고 생각하고(지금도), 윤은혜, 채정안은 고소영, 김희선급 연기력으로 생각했었다.
소재는 또 남장여자. 만화에서는 자주 봤지만 과연 이게 가능한가? 100% 여자 목소리 나고, 누가 봐도 여자로 보이는데 등장인물들끼리만 감쪽같이 속는 비현실적인 장면들로 가득차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대개 등장인물들이 전혀 공감가지 않는 고민들로 울고불고 하다가 각각 짝짓기 화살표를 연결하면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유치할 게 뻔하다는 내 예상은 빗나갔다. 이런 빗나감이라면 나는 언제나 환영이다. 기대 이상의 작품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설정의 상식성
코믹류의 중견배우들은 대개 부모 역할 똑바로 못하는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괜찮은 작품성의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도 임수정 쪽의 어머니와 가족들이 비현실적인 코믹 캐릭터로 등장해 감동을 깎아 먹었다(물론 나는 좋은 여배우인 옥지영을 좋아하지만 캐릭터를 빨리 바꾸지 않으면 그저 그런 배우로 끝날 것이다). 커피 프린스에서도 극초반에 박원숙이 사고를 치길래 '아 저거 또 저런 설정이네' 하고 생각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이후부터는 적절한 배려심을 가진 보통의 어머니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다. 이 드라마에서 중년은 미쳐돌아가는 캐릭터가 아닌 것이다.
가장 큰 비밀이 되었을 남장여자라는 비밀. 3류 드라마라면 이 비밀은 엄청나게 중요하게 취급되어 주인공과 그의 편에 선 사람들은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비밀이 까발려지면서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이 위기는 다시 또 엄청난 사건을 통해 해결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커피 프린스에서는 알려지면 알려지는 거고, 비밀은 없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원리에 따라 주변에 알려진다. 주인공이 그걸 막기 위해 애를 쓰고, 그래서 의심하던 등장인물이 다시 '남자인갑다~' 하고 의심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알게 되면 알게 되는 것이다. 청소 몇 번으로 비밀을 지켜주다 지키기 귀찮으니 까발려버리는 일본넘 캐릭터, 이 얼마나 상식적인가!
인물들간의 대립도 철저하게 상식선에서 전개되고 있다. 때린 걸 사과도 하고(나 처음 본 것 같다. 주인공이 주먹질 하고 사과하는 거), 일일드라마처럼 악을 쓰지도 않는다. 말이 통하는 사회이므로 중요한 갈등은 모두 대화로 해결된다. 극으로 가지 않고 상식선에서 해결된다. 일상적이면서도 긴장감있는 관계, 이것이 현실적인 인간 관계다.
소녀적 감수성의 판타지
이성을 꿈꾸는 것은 하나의 판타지다. 오래 전에 게임 매거진이란 잡지에 연재했던 TRPG관련 글에 이런 말이 있었다. 'TRPG를 하다보면 여자애들은 70%가 꽃미남 남자 캐릭터를 만들고, 그 중 다시 70%가 동성애를 한다'는 말이었다. 남자가 되고 싶은 욕망과 남자를 사랑하고 싶은 욕망이 섞이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본다. 커피 프린스에서 윤은혜는 남자가 되었고, 남자와 사랑한다. 미소년이 되고 싶고, 미남과 사랑하고 싶은 것. 이것이 소녀적 감수성이다(물론 남자가 이런 걸 -미소녀가 되어 미녀와 사랑하는 뭐 그런 것을- 꿈꾸면 오타쿠에 변태소리를 듣는다. 억울하다~). 일반적으로 소녀적 감수성은 남성들에게는 비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인데, 커피 프린스에서는 윤은혜가 진짜 남자같이 행동함으로써 남성들에게 '응 너는 우리 일원으로 인정'이라는 식의 감정을 이끌어 낸 것 같다.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에 남성을 이해하는 획기적인 여성 캐릭터가 탄생한 것이다. 이런 남성성은 또다른 소녀적 감수성을 지닌 가수 지망생 동생 캐릭터과 또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면서 더욱 강조되고 있다.
연기자
말로 들었을 때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윤은혜의 남장 여자 연기는 어쩌면 남자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저건 완벽한 남자야!' 라고 말하긴 어렵다). 여성스럽지 않은 얼굴선이 요즘 뜨는 '남동생류'와 맞아 떨어졌다. 목소리는 사실 남자 목소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남성스럽다는 느낌이 묻어났다. 이 정도로 연기를 할 수 있다면 궁이나 포도밭때에 비해 연기력이 배로 늘었다고 표현해도 될 듯하다.
채정안은 좋은 역을 맡아 성공적으로 캐릭터를 수행해 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쳐 날뛰는 악녀가 아닌, 상식을 지녔기 때문에 주인공과 반대편에 위치하는 이런 설정이야말로 현실에 가까운 것이다. '나는 달린다'에서 '미안하네요'라는 말을 화면을 안 보고 듣다가 '저거 비아냥대는 거지?'라고 생각했는데 얼굴은 정말 미안한 표정이었던 연기력 제로의 그 채정안이 아니었다. 이선균과의 훌륭한 호흡은 이선균이 잘 리드하고 있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채정안의 연기력도 이제 어느 선에 올라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선균과 공유는 흠 잡을 구석이 없다. 애초에 '저런 연기력의 여자들하고 드라마를 찍는 걸 보니 고생깨나 하겠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여자배우들의 괄목상대할 만한 성장에 따라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고, 지금까지 닦아 온 연기력을 온전히 드라마에 녹여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대사야 작가가 쓰는 것이겠지만, 세밀한 말투와 동작 하나하나가 이 남자배우들의 역량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야기 전개
이야기 전개도 빠른 속도로 전개되어 지루하지 않다. 물론 개중에는 뭐 다 같이 단합대회를 간다거나 음악회를 한다는 딱히 중요해보이지 않는 것들도 끼어있긴 하지만, 나름대로 갖출 것만 갖추고 보기에 지루한 것들은 빼버리고 있다. 주제곡 나오고 몇분간 주인공 얼굴만 죽어라 클로즈업하는 채널변경유도장면도 없다. 공유의 출생의 비밀이 나오긴 하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윤은혜와 남매간이었더라 하는 식의 막가는 내용이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이므로, 공유의 출생의 비밀은 이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애정관계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공유의 어머니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비상식적으로 사람을 몰아붙이는 캐릭터가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애정관계에 태클을 걸 일이 없다.
정리
윤은혜를 다시 보게 된 것이 커피 프린스를 보면서 얻은 하나의 수확이고, 내가 좋아하는 이선균이 수많은 단막극을 거쳐 도망자 이두용, 하얀 거탑에 이어 다시 좋은 작품에서 중요한 역을 맡은 것이 또 하나의 수확이다. 사실 앞의 수확보다 뒤의 수확이 더 즐겁지만, 앞의 것이 더 눈에 확 띈다. 무능력자로 봤던 사람이 실력자였던 것도 즐겁고,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도 뒤에 있던 사람이 드디어 정면에 나온 것도 즐겁다.
물론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아주 창의적이거나 철학적인 주제를 담고 있지는 않으므로 결국 이 드라마에 대한 최고의 칭찬은 '재미있었다' 정도가 될 것이다. 가벼운 주제를 가벼운 터치로 다룬 작품에 대작이니 걸작이니 하고 극찬을 붙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재미를 목적으로 하는 현실적인 드라마로서 충분히 의도한 바를 이룰 드라마로 보인다. 연장도 1회밖에 하지 않는다니 작품성을 위해서도 적절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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