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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9   나는 쓰고 싶은 소설이 있었다. 
2007/08/13   언젠가 친구의 고민을 들은 적이 있었다. 
2007/08/13   나는 당신에게 밥을 사달라 한 적이 없다. 

 

나는 쓰고 싶은 소설이 있었다.
+   [생각]   |  2008/07/19 03:46  
일상 중에는 생각밖에 할 게 없는 시간이 가끔 생긴다. 내가 글재주가 있었더라면 이럴 때마다 튀어나온 공상의 쪼가리들을 모아 소설이나 드라마 대본을 한 편 썼을 것이다. 사실 나는 돌려서 표현하는 이런 문학적인 재주는 없다. 진지하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멋있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힌 지금으로선 저런 재주를 키워볼 마음도 없다. 어릴 적에야 문학적인 허영심에 해보고 싶어했지만 이젠 평생을 가도 내가 소설을 쓰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박노자를 읽고 보니 고종석이 밋밋하게 느껴지는 것도 진지와 직설에 더 가치를 두는 내 성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소설이나 드라마 대본을 쓰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그 내용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바뀌고 있다. 완성은커녕 시작할 리도 없는 글짓기지만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중학교 때 쓰고 싶었던 소설은 초등학교 때 자신을 학대하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것을 완전범죄로 만든 남자가 결국 그 사실을 알게 된 동생에게 죽는다는 하드보일드한 이야기였다. 중학교때까지 이걸로 만화로도 그렸었는데 어느 순간 다 버려서 지금은 없다. 정신이 사라졌는데 물질이 남아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쓰고 싶었던 소설은 고아 남매를 후원하여 훌륭한 성인으로 키우는 학교 선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인공 이름도 아직 기억이 나는데 고아 소녀 이름은 성효진이었고,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이름은 안승민이었다. 대학교에서 '박효진'과 '안현정'을(성까지 부르는 건 내가 기분 나쁠 때 말투라고 누가 그랬던 것 같지만, 여기서는 비교를 위해 어쩔 수 없다) 만났을 때 처음부터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이들의 성격이 좋았던 것이 첫번째 이유겠지만 내 개인적으로 애착이 있는 있는 이름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때 쓰고 싶었던 소설은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여자애가 남자애를 찾아 같은 대학에 온다는 이야기였는데 결국 내가 크게 점수를 주지 않았던 '연애소설'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내용이었다. 이 내용은 돌림소설 때 한번 써보려고 했으나 역시나 미흡한 글재주 덕에 엉망이 되고 말았다. 언젠가 이걸 본 현정이가 여주인공이 딱 효진이라고 했었다. 물론 그것은 실제 글 내용과 상관없이 나를 놀리려고 했던 말일 것이다.

졸업하고 나서 쓰고 싶었던 소설 중 하나는 애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학원'선생과 그의 여자후배 '학교'선생 이야기였는데, 노파심에 말해두자면 현정이가 붙기 전에 생각한 이야기다. 학교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많은데, 애들이 학교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원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는 것 같아 한번 써보고 싶었지만, 글쓰기는 재미있는 것만큼이나 귀찮은 일이다. 완성해도 그렇겠지만 그것이 완성하기 전엔 더욱더 별 가치가 없다는 점에서 나는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요즘 쓰고 싶은 소설이 있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시덥잖은 공상을 죽 써본 것이다. 진지한 이야기가 좋겠다고 생각하여 한참을(그래봤자 버스에서 몇 번) 뭐가 좋을까 고민해서 내린 결론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과연 나는 나의 잘못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어떤 남자가 잠에서 깨어난다. 아무도 없는 곳이다. 그는 다시 평소와 같이 일상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일상이 그를 거부한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국가적으로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들에게 쫓기게 되고, 결국 자신이 살인 누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을 도와주는 친구와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던 그는 문득 자신의 기억에서 몇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살인 누명은 누명이 아니라 정말 자신이 저지른 것임을 알게 된다. 물론 죽인 것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자신이 죽인 것이 분명하다는 것은 알게 된다. 실수가 아닌 계획된 잔인한 살인 말이다. 결국 그는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친구에게서마저 도망치기 시작하고, 기억도 나지 않는 자신의 죄에 대해 죄값을 치러야 할까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한다.

그가 내릴 결론은 사실 내가 아직 내리지 못했다. 인간은 과연 자신의 행동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평소와 똑같이 자고 일어났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살인을 했다면 벌을 받아야 할까? 범죄를 저지른 '나'는 과연 나일까? 같은 '나'가 아니라면 어쩌다 범죄자와 몸만 같이 붙어 있는 '나'는 처벌받기엔 좀 억울하지 않을까? 나는 이 상상을 하면서 '진짜 억울하겠다~'라고 생각했으나 그야 모를 일이다.

반대로 보면 인간은 역사적인 존재라고 한다. 과거의 내가 모여 현재의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경험, 기쁨, 슬픔, 즐거움, 노여움, 부끄러움, 거기에 망각한 기억과 그 흔적까지 모두 모아야 '나'가 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와 큰 차이를 보이는 어떤 과거의 나라고 하더라도 내가 역사적인 존재인 이상 과거의 잘못에 대해 사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일본의 미친 짓을 보고 있자면, 사실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더 적절해보이기는 하지만.

써놓고 나니 사족이 몸통보다 긴 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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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문학, 소설, 역사적존재,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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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친구의 고민을 들은 적이 있었다.
+   [옛 글 모음]   |  2007/08/13 21:48  
그 고민이란건, '나는 난데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와, 아버지에게 나와, 친구들에게 나와, 선배들에게 나와, 후배들에게 나와, 학원 선생님들에게 나, 이 많은 나들 중 진짜가 과연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삶이 '거짓으로 점철된 것은 아닐까, 친구들과의 관계 역시 거짓은 아닐까, 누군가와 웃으며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의 생각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모르는 상태에서도 조언이라고 끄역끄역 해대는 내가 있다, 내가 싫다' 라는 고민이었다.

그때는 뭐가뭔지 모르던 군바리. 나 역시 같은 고민에 빠져, 과연 어느 내가 진짜인가, 과거의 내가 진짜가 아니라고 하면, 그럼 만약 과거의 내가 죄를 지었다쳐도 현재의 나는 그걸 책임질 필요가 없어진다. 미래의 내가 진짜가 아니라고 하면, 나는 웃기는 상황으로 치닫는 내가 되는 것이다. 현재의 내가 진짜가 아니라고 하면 말이 안된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는데, 과연 있긴 있는걸까 하다가

'드래곤 라자를 읽어봐.'

라고 조언했던 적이 있다. 거기에 보면 너랑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 드래곤 로드가 샌슨을 죽이겠다고 하자 죽음의 공포에 휩싸였던 샌슨. 로드가 동굴을 나가 마을사람들을 죽이겠다고 하자 상대도 되지않을 정도로 강한 드래곤 로드를 상대로 욕을 퍼부으며 죽여버리겠다고 날뛰지. 나는 단수가 아니고 복수라는 말이 드래곤 라자에 나오는데 연인에게의 나와, 친구들에게의 나와, 부모님에게의 나와, 원수들에게의 내가 공존한다는 것이지. 그들의 '나'는 각각 다른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거지.

친구는 내 대답을 듣고 이해가 잘 되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별다른 말없이 넘어갔다. 그냥 고맙다고 하면서. 아마도 더이상 이야기를 해봤자 나은 대답을 들을 수 없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당시의 나에게 그건 사실이었다. 뭘 알아야 대답을 하지.

어제 하이데거의 실존철학과 양심에 관한 세미나를 듣다가 문득 그 고민에 대한 대답이 떠올랐다.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각각 개별적인 관계속의 나는 실제의 내가 아니라, 나란 존재의 가능성일 뿐이었다. 진짜 나는, 과거의 나와 선을 그을 수 있는 나, 미래의 나를 아는 나로서, 일상에 안주해 몰락하는 존재로서의 나를 뒤로하고 죽음에 이르는 나를 직관할 수 있는 나.

현재의 나야말로 실제의 나다.(그리고 실재의 나다)

현재의 나는 몰락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미래의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지니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될 수 있는 가능성도 지니고 있다. 이것이 여타의 나와 다른 점이다. 과거의 나는 무엇이 될 수도 없고, 미래의 나 역시 다른 내가 될 수 없다. 다른사람에게의 나 역시 스스로의 의지가 전혀 없는 존재 말하자면 양심이 없는 존재이며, 결단을 내릴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현재의 내가 정말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나의 죄를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내 존재가 역사적이기 때문이다. 내 존재는 과거들의 종합이며, 과거에 지금 막 지나온 현재가 덧붙여져 결정되는 역사적인 존재이다. 만약 과거의 어떤 내가 없었다면 현재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모든 상황을 거쳐온 내가 형성된 것은 과거의 내가 있었기 때문이며, 그 과거의 '나'들의 종합된 존재인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에 대해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 친구는 요즘 그 고민 안하는 것 같던데.

 
 
     가능성, 과거의 나, , 미래의 나, 실존, 역사, 존재, 책임, 하이데거, 현재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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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에게 밥을 사달라 한 적이 없다.
+   [옛 글 모음]   |  2007/08/13 21:16  
04학번 새내기들과 정음회 모임이 있었다. 비가 와서 축구를 하지 않고 간단히 밥만 먹겠다는 연락을 빵을 통해 받은 터라 느긋하게 TV를 보면서 연락을 기다리는데, 빵에게 온 전화에서는 나에게까지 들리게 욕설이 쏟아져 나온다. 동문들이 와서 축구를 하겠다는데 98학번이 '감히'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나보다 정신연령이 낮은 선학들은 선배로 보지 않는다.

원래 가지 않으려 했던 자리지만, 빵이 한숨을 쉬고 나가길래 나도 따라나섰다. 언젠가의 쇠파이프 때처럼, 나는 시덥잖은 이유로 내 동기가 당하는 걸 두고 볼 만큼 느린 편은 아니다. 축구를 하지 않으려 했다가 다시 축구를 하게 된 것은 아마도 자기들이 수고롭게 학교까지 '오셨다'는 이유로 재학생들한테 지랄거린 동문들 때문일테지. 자기들이 볼을 차고 싶으면 차면 될 것이지, 오지 않았다고 전화를 해서 욕지거리를 할 것은 뭐냐. 나에게 직접 한 것은 아니라 당장에 가서 뒤통수를 때리거나 할 수는 없지만, 만약 내 앞에서 다시 욕을 한다면 항상 하는 말처럼 '죽여버리겠다'라고 뇌까리며 운동장으로 걸어갔다.

운동장에는 정음회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있고, 농구장에 대여섯명이 서 있다. 오래간만에 영제선배도 와 있는 것이, 조금 있다가 혹시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에 약간 걸리적거린다. 영제선배한테는 다른 사람들과 싸우는 모습은 별로 보이고 싶지 않다. 평소 쓰레기 취급하는 백종운이 '98 오늘 한따까리 한대'라고 빵에게 까부는 것을 보고 언제나처럼 경멸감이 일어난다. 마음의 준비는 항상 단단히 하고 다닌다. 이번에도 역시 주먹다짐까지 생각하고 마음 굳게 먹고 갔지만, 참으라고 참으라고 말리면서 간 빵이, 먼저 이것저것 이야기하더니 말로 해결한다.

축구가 끝나고 04학번 새내기들과 함께 도야지인생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04학번 중에는 대전고등학교 출신이 2명 있었다.

나는 나와 친하지 않은 것들이 감히 나를 농담에 올리는 것을 싫어한다.

지리산에 갔을 때야 순후와 종신이, 빵이 있었으니 웃자고 하면 웃을 수도 있지만, 내 대전고 후배들이 있는 데서 내가 선배로 취급하지 않는 것들이 '대전고는 상태가 좋지 않아~'라고 떠드는 것은 기분이 아주 좋지 않다. 농담이니 담아두지 말라고 할지 몰라도, 농담이고 아니고는 기분 나빠지는 사람이 판단할 일이다. 말하는 놈들이 판단할 일이 아니다.

나는 남에게 밥을 얻어먹지 않는다. 그건 군 제대후 복학하고나서 생긴 버릇이 아니다. 나는 1학년때부터 남에게 밥을 얻어먹은 역사가 거의 없다. 휴가나왔을 때 홍규선배한테 초코파이를 받은 적이 있고, 광희선배한테 가끔 얻어먹었다. 용길선배한테 찬양시를 써드리고 한 끼 얻어먹은 적이 있다. 광희선배한테 장난으로 밥 사줘요~ 라고 했던 적은 가끔 있지만, 그것도 복학한 이후의 이야기다. 영제선배가 남과의 대화를 갈굼으로 시작하듯, 나는 광희선배한테는 '밥 사줘요~', '시러~', '배고파요~', '굶어~'라는 식으로 대화를 시작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외 다른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걸지는 않는다.

나는 1학년때 누군가에게 밥을 얻어먹은 적이 없다. 동기들의 리포트를 도와주는 대신이나, 컴퓨터를 고쳐주는 대신 한끼씩 얻어먹은 적은 있다. 생일을 챙겨주고 한 끼씩 얻어먹은 적은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남에게 밥을 얻어먹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이건 특별히 인간관계가 나빠서가 아니라, 정확히 해 두고 싶은 것이 있어서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무언가 해주었음을 요구하며 쓸데없는 일을 요구할 때, 나는 당신들에게 받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말해두기 위하여. 나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받지 않았으며, 따라서 나에게 무언가 요구하며 무리한 일을 시킬 때는 가볍게 거절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밥을 사달라 한 적이 없다. 흔한 시험문제 족보 하나 물어본 적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내 육체의 성장이나 정신의 성장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저렇게 되지 않겠다는' 대상, '반면교사'로서의 도움은 되었을지 몰라도, 나는 당신의 선의를 요구한 적도 없거니와, 당신이 선의로 생각하는 것이 내게 닿는 것을 더러운 오물을 만지듯 불쾌해 한다는 것.

영제선배는 '네가 싫어한다는 것을 상대에게 알리지 않아야 네가 더 강자가 된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

오늘 도야지인생에서 '얘가 1학년때 어땠는 줄 아냐? 맨날 밥사줘요~ 라고~ 절라 짜증나!'라고 떠드는 한 선학을 보고, 나는 비웃음을 흘리게 된다.

당신은 당신의 그 너저분한 기억력으로 인하여 후학들에게 바보취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 농담, 선배, 정음회, 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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