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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_해당되는 글 23건
2008/07/19   나는 쓰고 싶은 소설이 있었다. 
2008/07/13   나는 과거와 단절하며 살아왔다. 고백에 대한 짧은 생각 
2008/07/06   내 동기들 
2008/06/26   비폭력의 한계는 명확하다 (2)
2008/05/27   신분 세습이 봉건시대만의 특징인가 
2008/05/19   동성애에 대한 간단한 생각 
2008/05/15   군 전역 전에 포대장이 우리를 불렀다 
2008/04/18   하안거탑이 일본판이 낫다는 사람들이 있다 
2008/02/13   고종석이 골프, 승마와 축구를 이야기했다. 
2008/02/11   장애우라는 말에 대하여 (1)

 

나는 쓰고 싶은 소설이 있었다.
+   [생각]   |  2008/07/19 03:46  
일상 중에는 생각밖에 할 게 없는 시간이 가끔 생긴다. 내가 글재주가 있었더라면 이럴 때마다 튀어나온 공상의 쪼가리들을 모아 소설이나 드라마 대본을 한 편 썼을 것이다. 사실 나는 돌려서 표현하는 이런 문학적인 재주는 없다. 진지하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멋있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힌 지금으로선 저런 재주를 키워볼 마음도 없다. 어릴 적에야 문학적인 허영심에 해보고 싶어했지만 이젠 평생을 가도 내가 소설을 쓰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박노자를 읽고 보니 고종석이 밋밋하게 느껴지는 것도 진지와 직설에 더 가치를 두는 내 성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소설이나 드라마 대본을 쓰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데, 그 내용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바뀌고 있다. 완성은커녕 시작할 리도 없는 글짓기지만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중학교 때 쓰고 싶었던 소설은 초등학교 때 자신을 학대하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그것을 완전범죄로 만든 남자가 결국 그 사실을 알게 된 동생에게 죽는다는 하드보일드한 이야기였다. 중학교때까지 이걸로 만화로도 그렸었는데 어느 순간 다 버려서 지금은 없다. 정신이 사라졌는데 물질이 남아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쓰고 싶었던 소설은 고아 남매를 후원하여 훌륭한 성인으로 키우는 학교 선생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인공 이름도 아직 기억이 나는데 고아 소녀 이름은 성효진이었고,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이름은 안승민이었다. 대학교에서 '박효진'과 '안현정'을(성까지 부르는 건 내가 기분 나쁠 때 말투라고 누가 그랬던 것 같지만, 여기서는 비교를 위해 어쩔 수 없다) 만났을 때 처음부터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이들의 성격이 좋았던 것이 첫번째 이유겠지만 내 개인적으로 애착이 있는 있는 이름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대학교 때 쓰고 싶었던 소설은 초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여자애가 남자애를 찾아 같은 대학에 온다는 이야기였는데 결국 내가 크게 점수를 주지 않았던 '연애소설'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내용이었다. 이 내용은 돌림소설 때 한번 써보려고 했으나 역시나 미흡한 글재주 덕에 엉망이 되고 말았다. 언젠가 이걸 본 현정이가 여주인공이 딱 효진이라고 했었다. 물론 그것은 실제 글 내용과 상관없이 나를 놀리려고 했던 말일 것이다.

졸업하고 나서 쓰고 싶었던 소설 중 하나는 애들을 열심히 가르치는 '학원'선생과 그의 여자후배 '학교'선생 이야기였는데, 노파심에 말해두자면 현정이가 붙기 전에 생각한 이야기다. 학교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많은데, 애들이 학교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원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는 것 같아 한번 써보고 싶었지만, 글쓰기는 재미있는 것만큼이나 귀찮은 일이다. 완성해도 그렇겠지만 그것이 완성하기 전엔 더욱더 별 가치가 없다는 점에서 나는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요즘 쓰고 싶은 소설이 있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시덥잖은 공상을 죽 써본 것이다. 진지한 이야기가 좋겠다고 생각하여 한참을(그래봤자 버스에서 몇 번) 뭐가 좋을까 고민해서 내린 결론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과연 나는 나의 잘못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어떤 남자가 잠에서 깨어난다. 아무도 없는 곳이다. 그는 다시 평소와 같이 일상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지만 일상이 그를 거부한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국가적으로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들에게 쫓기게 되고, 결국 자신이 살인 누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을 도와주는 친구와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던 그는 문득 자신의 기억에서 몇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살인 누명은 누명이 아니라 정말 자신이 저지른 것임을 알게 된다. 물론 죽인 것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자신이 죽인 것이 분명하다는 것은 알게 된다. 실수가 아닌 계획된 잔인한 살인 말이다. 결국 그는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친구에게서마저 도망치기 시작하고, 기억도 나지 않는 자신의 죄에 대해 죄값을 치러야 할까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한다.

그가 내릴 결론은 사실 내가 아직 내리지 못했다. 인간은 과연 자신의 행동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평소와 똑같이 자고 일어났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살인을 했다면 벌을 받아야 할까? 범죄를 저지른 '나'는 과연 나일까? 같은 '나'가 아니라면 어쩌다 범죄자와 몸만 같이 붙어 있는 '나'는 처벌받기엔 좀 억울하지 않을까? 나는 이 상상을 하면서 '진짜 억울하겠다~'라고 생각했으나 그야 모를 일이다.

반대로 보면 인간은 역사적인 존재라고 한다. 과거의 내가 모여 현재의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경험, 기쁨, 슬픔, 즐거움, 노여움, 부끄러움, 거기에 망각한 기억과 그 흔적까지 모두 모아야 '나'가 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와 큰 차이를 보이는 어떤 과거의 나라고 하더라도 내가 역사적인 존재인 이상 과거의 잘못에 대해 사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일본의 미친 짓을 보고 있자면, 사실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더 적절해보이기는 하지만.

써놓고 나니 사족이 몸통보다 긴 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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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문학, 소설, 역사적존재,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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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거와 단절하며 살아왔다. 고백에 대한 짧은 생각
+   [생각]   |  2008/07/13 04:07  

전학을 두 번 다닌 나는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고등학교 때 거의 볼 일이 없게 되었고, 중학교 친구들은 고등학교에 가서 세 명을 제외하고는 보지 않게 되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거의 잊었다. 대학교 친구들은 요즘도 자주 보는 친구들이 있으니 예외인 셈이지만, 수로 따지면 그도 많지 않다.

과거와 단절하게 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무리한 고백이다. 나는 죄책감에 빠져 산 녀석이다. 죄책감을 묻어 두고 사람들을 만나다가 결국 그것을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면 대개 '괜찮다' 하고는 다음날부터 보이지 않는 식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초등학교 때 친구인 수진이, 그 동생 유진이와 멀어졌고, 대전에 와서 짝이 되었던 손혜미와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5학년 담임이었던 주윤숙 선생님과도 대학교 때 편지를 주고 받다가 연락이 끊겼는데 아마도 정신과 의사도 아닌 그분이 감당하기에는 내 고민이 너무 우울하지 않았나 싶다. 최근에는 성임이와 이런 식으로 멀어졌다.

돌이켜보건대 나는 죄책감을 덜어내려고 무리하게 고백을 시도했던 것 같다. 고해성사를 듣는 신부가 아닌 사람의 입장도 생각을 했어야 하는데 말이다. 별 것 아니었던 일을 몇 년이나 마음에 담아두고 용서를 구할 날을 기다리는 것은 상대에게 부담이 될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너를 내 여자친구라고 애들에게 거짓말했다'고 고백하는 고등학교 3학년을, '술도 마시고 점점 타락하고 있어서 미치겠다'고 하는 대학교 1학년을, '중 1때 학원에서 널 봤는데 기분이 좋지 않아 네게 인사도 없이 지나쳤다'고 고백하는 대학교 3학년 복학생을, '멋있는 선배가 되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는 우울한 29세의 백수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나는 하지 않았어도 될 고백을 내 죄책감을 덜기 위해, 내가 순수하기 위해 털어놓았고 이것은 때에 따라 상대에게 불쾌감을 유발했다. 불필요하게 용서를 구하는 것은 어쩌면 쇼에 불과한 것이다. 듣는 사람의 마음이 편하지 않은 고백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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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백, 용서, 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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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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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의 한계는 명확하다
+   [생각]   |  2008/06/26 16:14  
삼일운동이 조선의 독립을 가져오지 못했던 것처럼, 촛불집회도 결과적으로 재협상을 가져오지 못했다. 이 두 번의 대규모 비폭력 시위를 놓고 보면, 비폭력 시위는 아름답고 고결한 모습이며 역사가 흐른 뒤 대단한 가치를 지닌 행위로 평가받을 수야 있겠지만, 사실상 그것이 당대에 가져오는 실리는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상대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악다구니를 쓰는 바에야 이런 것들 때문에 파생된 문제를 비폭력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안되면 말고'라는 식이 될 수 있다. 비폭력이란 말은 따지고 보면 물리적 행동이 아닌 대화로 해결을 보겠다는 것인데, 대화할 마음이 전혀 없는 상대를 대화로 다스려보겠다는 것은 상대를 너무 자기 수준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가 대화할 능력조차 되지 않는 수준이라면 더욱 그렇다.

비폭력은 사람들이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다수의 목소리를 이끌어내기는 쉽지만, 그렇다고 그 다수의 목소리가 적극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는 보장은 하지 못한다. 큰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행위없는 목소리라는 것은 허전한 것이다. 언제든지 목소리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엔 익숙하지만, 자신의 말은 그보다 덜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촛불집회에 한번이라도 나갔던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가치를 두기 위해서라도 그것이 옳았다고 생각할 테지만, 그렇지 않고 말만 찬성이었던 사람은 말을 바꿈에 있어서 아무런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 앞으로 5년간 이어질 조중동의 각종 찬양에 이번 촛불집회에 소극적이었던 사람들은 결국 속아넘어갈 공산이 크다. 따라서 행위는 숭고한 것이고 말은 공허한 것이다. 행위는 자제하겠다는 비폭력의 한계가 바로 이 부분이다.

촛불집회가 비폭력시위로 끝날 필요는 없었다. 중간중간에 언론에서 '비폭력시위'임을 강조하는 바람에 폭력을 동반한 정권퇴진운동으로 발전될 수 있었던 것이 사전에 차단된 것이다. 오히려 적절한 시기에 비폭력을 도중에 포기하는 쪽이 지금보다는 더 큰 성과가 있었을 수 있다. 두 달간 촛불을 든 결과가 결과적으로 빈손이니 사실 뭘 했어도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한나라당과 이메가의 지지율? 조중동이 10년 저주해서 정권을 바꾼 걸 보면 떨어진 지지율은 도로 회복된다. 그들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지 않는 이상 사람들을 속이고 노인네들을 선동하는 재주를 부리려 들 것이다. 언론과 사법부는 이미 이메가의 손아귀에 놀아나지 않는가? 등신같은 것들이 의석수까지 몰아준 마당이니 이메가는 이제 합법적으로 독재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 히틀러처럼 말이다. 교과서마저 자기들 입맛에 맞게 바꾼다니 앞으로 자라나는 아이들도 '사상교육'을 제대로 받게 될 것이다.

이번 일은 비폭력이란 단어가 주는 그 아름다움에 취해 본질적으로 추구했어야 할 것을 놓쳐버린 격이다. 삼일운동때도 일제는 얼마나 고마워했을까? 그 힘으로 다 뒤집어 엎을 생각을 했으면 수적으로 불리한 일제가 우리를 장악하는 것은 꽤 버거운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를 있게 한 독립투사들은 결코 비폭력을 신봉하지 않았다. 안중근 의사가 말로 이토를 죽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총이었다. 기득권이 마련한 제도적 장치 안에서의 도전이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조선의 독립은 삼일운동의 덕이 아니라 독립군의 항쟁과 원폭투하가 있었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미국이 원폭을 투하한 것은 수만을 학살한 엄청난 폭력이었고 지금도 비난받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것은 그들을 승전국으로 만들었다. 촛불집회가 비폭력노선을 포기했다고 해서 수만이 죽는 것도 아닌데, 시민의 힘을 모은다고 비폭력을 고집한 것은 스스로 힘겨운 길로 걸어간 것이다. 우리는 성자가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성자의 길을 걷도록 유도된 것이다.

비폭력은 소중하지만 그보다 소중한 것은 생명이고 민주주의다. 물론 이것은 모두 함께 이루어야할 가치들이지만, 그럴 수 없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당연히 후자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폭력은 참회하면 되지만 생명과 민주주의는 빼앗기면 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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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투사, 민주주의, 비폭력, 삼일운동, 이메가, 조중동, 촛불집회,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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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den 2008/06/26 16:44
잘 읽었어요^^ 정말 동감되네요.. 이제 이미 비폭력만을 외치기에는 너무 늦은거 같아요
대발이 2008/06/26 17:16
잘 쓰셨습니다.
애초에 시작부터 큰 가능성 만큼이나 한계를 갖고 시작했습니다. 어느 시점에서는 확실한 방향을 정할 필요가 있었겠지요. 그 시기를 놓친듯 합니다. 그리고 저들이 국민적 저항을 무시했던것 만큼이나 우리도 국민적 지지를 과신했지요. 그것이 얼마나 미약하고 때론 간사한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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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 세습이 봉건시대만의 특징인가
+   [생각]   |  2008/05/27 16:44  
홍길동전을 보면서 서자라는 홍길동의 처지에 안타까움을 표하거나, 박지원의 양반전을 보며 신분제도의 허점을 비판하는 것은 중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해보는 것이다. 허균의 유재론을 보면서 그가 분개했던 것에 공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신분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것은 꽤나 민주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비웃음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 시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말도 안 되는 걸 지키면서 살았대?'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사실 근현대를 살아가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걸 엄격하게 지키면서 산 이유는 현재를 보면 알 수 있다. 신분제 세습이 아직도 횡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신분이 이름만 재산이라는 형태로 바뀌었을 뿐이다. 특히나 극소수의 부유층에겐 말이다.

신분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대접받을 수 있는 권리였다. 그리고 행동을 결정하고 선악을 판결하고 행위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자격이기도 했다. 당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신분이 높은 사람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지 않고 그들의 행패를 묵인한 이유? 그것은 그들이 그럴 만한 자격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자격과 능력의 근거는 신분이었고. 현재는 그것이 얼마나 유치한 논리인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당시 사람들은 신분이 주는 권위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신분에 높고 낮음의 구별이 있는 것은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필연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문제는 당시의 신분과 마찬가지의 속성을 지니는 것이 현대사회에 아직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되어 가진자가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재산이다. 부모가 재산을 취한 방법이 정당한가 부당한가는 여기서 이야기할 부분은 아니다. 문제는 부모에게서 재산을 물려받아 그것을 '자기 것'으로 여기는 사고와 행위의 정당성이다. 중세사회에서 부모에게서 받은 신분을 자연스럽게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왜 그의 것이 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로 하자.

애초에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은 게으른 사람이 노동을 하지 않고 공동재산을 축내기만 했을 때 타격을 가하기 위해서였다. 사유재산의 인정은 부를 축적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했다. 보다 편안한 삶 - 이 말은 자신의 현재보다 편안한 삶이기도 하지만, 남보다 편안한 삶이기도 하다 - 을 추구하는 것은 나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존재에게 무언가를 주고 행복하게 만들려는 것도 어쩌면 본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모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자식들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는 것은 번식과 증식이라는 인간의 본능에 부합된다. 이 때문에 상속이 시작되었다. 사유재산의 축적과 그것을 대물림하는 것을 긍정할 때 사람은 죽을 때까지 생산 행위를 하도록 유도된다. 힘이 있을 때 열심히 일하고 늙어서는 여생을 안락하게 보내다 죽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일을 하다 죽는 것이다. 죽기 직전까지 일을 해서 얻은 재산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남겨지기 때문이다. 과연 이것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것을 차치하더라도 이렇게 해서 공동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 최소한의 존재이유는 있을 것이다.

사유재산의 인정은 더 열심히 일한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현재도 그러한가? 부자의 아들은 더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는가? 아버지가 열심히 일해 재산을 모은 것은 아들이 재산을 물려받는 데 당위성을 더해주지 못한다. 그가 재산을 모은 것과 그의 아들이 다른 사람의 아들들에게서 기회를 뺏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렇다고 그런 자들이 생산성이라도 높은가? 그렇지도 않다. 이래서는 사유재산과 그 상속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가 현대에 와서 모조리 부정되고 만다. 즉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인정되던 '사유재산'과 죽을 때까지 일을 시키기 위해 보장되던 '상속'은, 오늘날에 와서는 공동체 전반의 생산성에 해를 끼치고 있으며 열심히 일하는 자들이 일하지 않는 자들을 먹여살리는 기형적인 경제 구조를 만들어버렸다. 사회에 해가 되는 제도가 된 것이다. 존재이유가 사라진 것은 없애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왜 그의 것이 되어야 하느냐고? 우문이다. 질문 자체가 불필요했다. '아버지의 것이 그의 것이 되어야 할 이유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나오면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너도 너희 부모님한테 육체를 받았고, 부모님이 번 돈으로 먹고 살잖아. 넌 그럼 부모님한테 물려받는 것 하나 없이 살 수 있어?"라고 말이다. 살 수 있냐고? 살 수 있다. 그렇게 묻는 자들은 크게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사유재산이 필수불가결이란 이들의 주장은 대체 어떤 근거로 만들어진 것일까? '사유재산이 없으면 인간 존재도 없다'는 엄청난 비약을 당당하게 떠드는 자들은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걸까? 우주선을 타고 가다 인간이 한 살기 좋은 한 행성을 발견했다고 해보자. 내 것, 네 것을 가리지 않으면 그 우주선의 사람들이 모두 죽었을까? 만약 정말 그러하다면 고조선에서 사유재산을 명문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