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툴바

 

 

 

 
분류 전체.. (252)
개인 (174)
취미 (8)
한국문학통사 (10)
교과서 노.. (9)
문법 관련 (51)
국어  문법  노트정리  국립국어원  형태론  표준국어문법론  교과서  문학  한국문학통사  드라마 
 노다지가 무슨..
└>Daum 지식
 '하드웨어 안..
└>삽질쏘나타
 '하드웨어 안..
└>▦▦ Binary t..
 황석영 전향보..
└>개갈안나는 블..
 MB처럼 '광주..
└>Green Monkey..
«   2012/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국립국어원 묻..
+ 동혁이 싸이
+ 네이버 지식인..
+ 박효진 대장군..
+ 현정이 싸이
+ Total : 86,456
+ Today : 4
+ Yesterday : 21
  

 

 

 

요즘은 농담을 진담으로 굳이 만들어가는 분위기다
+   [개인/어제와 오늘 하루]   |  2011/03/02 00:04  
이다해의 드레스 차림이 시끄럽다. 탁 트인 노란 드레스 속으로 하얀 종이인지 천인지가 보였다는 것인데, 물론 한눈에 보기에도 영락없이 휴지처럼 보인다. 넓이로 보나 색깔로 보나. '저거 휴지 아냐?' 정도는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상식적인 반응이다. 그런데 '저건 진짜 휴지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저건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나오면서 휴지가 낀 걸 모르고 나온 것이다.'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거기에 손모가지를 걸고 말해 보라고 하면 그건 100% 그런 휴지라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아 물론 사소한 일에 손모가지까지 걸 필요는 없지만)

기자가 어떤 의도로 올렸는지는 물론 알 수 없지만 대강 '꼭 휴지 같지? 웃기지?' 하는 식으로 올렸을 것이다. 누리꾼들? '진짜 휴지 같다.'라고 댓글 달며 웃을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이다해도 같이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볼일 볼 때 쓴 휴지다.'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속사 측에서는 '우그러지지 않게 덧댄 천'이라고 공식적으로 말했다고 한다. 농담기를 빼고 휴지와 덧댄 천 중에 어느 것이 더 현실적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이다해가 하체에 감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코디가 눈이 삐었을 리도 없다. 길거리의 사람들 1000명 중에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휴지 낀 채로 모르고 다닌 사람이 1명이나 될까? 그렇게 댓글을 단 사람들은 그런 경험이 있는 자들인가?

왜 개그를 개그에서 끝내지 못하고 진담으로 만들까?

국가대표 개그 담당 캐릭터로 꾸준히 승선한 차두리도 마찬가지다. 탁월한 신체조건과 정반대인 형편없는 발밑기술. 정말 비상식적인 스피드와 백지 상태인 전술능력. 이들의 조화가 우스운 것은 사실이다. 차두리의 경기를 보면 "쟤 뭐하냐! 왜 그리 가!" 하다가 황당하게 해결되는(상대가 넘어진다거나 공이 상대 맞고 튀어 좋은 자리에 떨어진다거나 하는 식으로) 사태를 보고 배를 잡고 웃은 적도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차두리가 엄청난 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야 수비수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차범근 감독이 미리부터 수비수로 키웠으면 몰라도, 차두리는 국대감이 아니었다. 단지 웃긴 선수였을 뿐이다. 차두리가 꾸준히 국대에 승선하고 커온 것은 차범근 감독의 위상도 있겠지만, 옆집 친구같은 개그 캐릭터가 국대에서 좌충우돌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즐기고 싶은 팬들의 응원 덕이 컸다고 본다. 물론 나는 몇 년 전의 차두리가 국대감이 아니었다고 본다. 보는 사람은 웃을지 몰라도 국대 엔트리를 놓고 경쟁하던 선수들은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것이다. 뭐 아무튼 이런 경우는 개그를 좋은 방향으로 승화시킨 케이스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역시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허경영이다. 허경영은 웃긴 녀석이다. 어지간한 코미디언만큼은 하는 것 같다. 그의 어설프면서도 광오한 거짓말은 딱 인터넷 악플러의 수준이다. 대통령 후보라는 사람의 우스개에 가까운 공약과 언행은, 쓰레기들이 잔뜩 출동한 지난 대선에서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했다. 하지만 웃기다고 해서 그가 대통령감인 것은 아니다. 장난으로 시작해서 많은 사람들이 허경영을 찍었지만, 적어도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투표에 참여할 때에는 최소한의 진지함을 갖추어야 한다고 본다. 가슴에 손을 얹고 허경영이 대통령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현 대통령과 비교하면야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최소한 허경영은 쉽게 끌어내릴 수는 있었을 테니까.) 웃을 때는 웃더라도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

왜 가볍게 놀리는 수준에서 그치지 못하고 '똥 닦은 휴지를 꼽고 다니는 여자'라고 비웃고 손가락질하는 걸까? 그것이 진짜라고 생각하나? 사실이라고 생각한다면 상식이 모자란 것이고(그건 만화나 시트콤에 나오는 거고),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다면 배려가 모자란 것이다.

'공인으로서의 숙명 어쩌고 저쩌고, 변기에 그냥 앉지 못하고 휴지 깔고 앉았다가 젖은 채로 일어난 여자, 인정할 건 인정해라' 등의 별 허섭스레기같은 댓글들을 보니 참 어이가 없다. 기자 탓도 해야겠지만, 그걸 '똥 닦은 휴지'로 기정사실화한 것은 댓글이다.
 
 
     드레스, 이다해
     0   0
이 글의 관련글(트랙백) 주소 ::    http://dongri98.tistory.com/trackback/257 관련글 쓰기

아이디 
비밀번호 
홈페이지 
비밀글   

 

 

95학번 인희 선배의 시였다.
+   [개인/어제와 오늘 하루]   |  2011/02/27 22:48  

어떤 여자가 물가에서 잠깐 서서 생각한 후 자전거 페달을 밟아내리는 내용이었다. 표면적으로 여자의 자살을 의미하는 내용이었는데, 나는 이 여자는 반어적으로 강한 의지를 지니고 있어서 물 건너에 있는 어떤 것, 혹은 어떤 이를 찾아가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선배들이 혹시 기표와 기의를 아느냐고 물으며 박수를 쳐 주었고, 그날 받은 박수가 아마 시쓰기에 몰두하게 된 계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 여자가 생각난다. 엄청나게 지쳐 있던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죽었을까? 인희 선배가 생각한 장르는 뭐였을까? 그렇게 자살하고 끝나는 지독하게 사실적인 우울한 단편 독립 영화였을까, 여자가 바다 밑을 달려 어떤 이를 만나고야 마는 동화였을까? 그대의 삶이 동화와 같을 수만 있다면. 그 여자를 위해 장르를 바꿔 본다. 해피엔딩이다. 아침마다 그대로 눈을 감은 채 뒤척이고만 있다. 조금만 더 꿈을 꾸고 싶다고.

눈을 뜨면 나는 동화적 진실이 파괴되어 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아야만 한다. 당연히 손에 쥘 것이라 생각했던 만화나 소설 속의 장면들, TV, 영화, 드라마 속의 장면들이 내 삶과 지독히 유리된 것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겨울 새벽 차가운 거실의 섬뜩함. 가로등 불빛이 날이 서 파고들어 온다. 그게 나의 것이 아니었다니. 하긴 수능 끝나고 다녔던 대학소개행사에서 '우리 대학으로 오세요'라고 마스코트들이 외치는 말도 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지. 춥다. 자존심만 버리면 먹고는 살 수 있을 거라는 조각난 희망마저 '그건 현실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라는 비웃음을 받으며 가루가 되어 간다. 세상에는 소원을 들어주는 자 따위는 없고, 의지를 칭찬해 주는 자도 없다. 정현아 씨에게 '내 인생은 코미디야'라고 농담하지만, 정말 왜 내 인생은 코미디여야 하는가? 왜 시트콤마냥 걱정이 현실이 되고, 발버둥칠수록 나락으로 떨어지는가? 장르만 바뀌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는데 말이다.



뭔 상관이랴. 삶이 동화 같지 않아도 코미디언이 무대에서 울지 않는 것처럼 버티면 되는 것이지.

그냥 좀 짜증이 났다.


 
 
     동화, , 시트콤, 장르, 코미디, 해피엔딩
     0   0
이 글의 관련글(트랙백) 주소 ::    http://dongri98.tistory.com/trackback/256 관련글 쓰기

아이디 
비밀번호 
홈페이지 
비밀글   

 

 

민희가 아마 깜짝 놀랐을 것이다.
+   [개인/어제와 오늘 하루]   |  2011/02/12 23:16  

몇 시간이나 타고 다닌 차의 기사양반이 하는 말이, 신호등을 보고 "저거 빨간 불이야?"였으니 말이다(물론 그건 빨간 불이었다). 이런 말을 할 거라고 미리 알았더라면 민희는 처음으로 고속도로에 나가는 빨간 마티즈에 절대 올라타지 않았을 것이다. 내 입장에서 변명을 하자면 사실 저렇게 물은 것은 일종의 관성이었다. 민희가 네이버에서 뽑은 지도를 들고 조수석에 앉아 종일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준 터라, 뭐든 계속 민희에게 물어 확인하는 버릇이 생겨 버린 것이다. 그것도 겨우 반나절 사이에. "여기서 오른쪽으로 빠지는 건가? 여기? 여기? 무슨 분기점?"하며 두번 세번, 묻고 또 묻고 했다. 오늘 처음 탄 고속도로라 자칫하면 바다구경이라도 하게 될까 봐 긴장이 되었다. 이런 긴장은 낡아 부서진 '차문 위쪽에 달린 빗물 막이 덮개(공식적인 이름은 모른다)'가 속도를 낼 때마다 따닥따닥거리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이기도 하다(문을 닫을 때 정전기가 무서워 플라스틱 덮개를 밀었더니 문은 안 닫히고 덮개가 쪼개진 것이다). 공포 분위기는 음향효과만은 아니어서, 실제로 오른쪽 차선으로 앞 차를 추월하려다가 다른 톨게이트로 나가 버릴 뻔하기도 했고, 청주에서는 동서울로 빠질 뻔하기도 했다. 물론 오늘의 압권은 맨 앞에 적어 놓은 것처럼, 신호등을 보고 민희에게 "저거 빨간 불이야?"라고 물어 본 것이다. 누가 들었으면 운전면허증을 압수하려 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까지 면허시험장에서 내게 색약을 때린 검사관에게 약간의 불만이 있었으나, 오늘 일로 색맹 판정을 받지 않은 것만도 감사하게 여기기로 했다.

민희와 청주 장군집에 다녀왔다. 장군집에 가 보기로 한 건 시청에서 행정인턴 할 때의 약속이니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가기로 해 놓고도 여지껏 가 보지 못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 빨간 마티즈 홍차가 아직 고속도로를 타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물론 예전에 통영에 다녀오긴 했지만, 그때는 내가 아니라 광희선배가 운전했으니까). 원래 3차 시험이 끝나면 가기로 했던 것을 조금 더 미뤄오다 오늘에서야 -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스터디를 시작하기 전에 - 가게 되었다.

원래는 5시에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인석이가 교회에 일이 있어 일찍 서산으로 가는 바람에 오후 늦게까지 기다릴 것 없이 3시에 만나 출발했다. 판암IC에서 난생 처음 통행권인지 표인지를 뽑는 기분이란. 나도 이제 고속도로를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 통영 갈 적에는 시속 100km로 달리면 뒤에 오는 차에게 차선을 비켜 주어야 했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었다. 뒤에서 혹시 '바쁜데 마티즈로 길 막지 말라'며 빵빵거릴까 봐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주말이라 그런지 100km만 유지해도 충분했다. 심지어 따닥거리는 홍차로 앞 차를 몇 대나 추월했다. 학술답사 사전 답사를 갈 때 광호가 150km으로 달리며 레이서가 된 것 같다고 환호했던 것이 생각났다. 딱 그 기분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민희에게 '단속중'이라는 경고문과 표지판을 살피라는 내비의 임무를 부여하고(사실 내 마티즈는 100km로밖에 못 달리니 카메라를 조심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무조건 전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고기옷 입고 왔지?(그렇다, 나의 사전에는 고기 먹을 때 입는 '고기옷'이라는 말이 존재한다)"라고 물어 놓고도 뭔 옷인지 확인하러 시선을 돌릴 용기도 없었다. 청주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고속도로에서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서청주IC로 나가 구제역 방역하는 걸 뒤집어 썼다. 와이퍼로 물기를 닦으며 느낀 청주의 첫인상은 신기하게도 대전보다 더 커 보인다는 것이었다. 눈 앞에 40층짜리 건물이 있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40층이라는 건 신호대기중에 세다가 포기하고 폰으로 사진을 찍어 집에 와서 확인했다). 공장이 여기저기 눈에 띄어서인지 전체적으로 활기찬 인상이었다. 장군집은 충북대 근처에 있었는데,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입구에 '일요일은 쉽니다'라고 써 붙인 것이 우리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사실 내일 스터디 끝난 뒤에 함께 갈까 했었는데, 만약 그랬다면 청주까지 헛걸음을 할 뻔한 것이다. 기억해 두자. 병규돈가스는 월요일에 쉬고, 장군집은 일요일에 쉰다.
 
장군집 문을 열자마자 자욱한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음식점을 다녀봤지만, 옆 테이블이 안 보일 정도의 연기는 여기가 처음이었다. 민희가 자주 다니던 집이 아니었다면 불이 났나 더럭 겁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자리에 앉아 오늘의 맛집 소개자인 민희가 '막창 + 껍데기 + 살고기'를 시켰다(살코기인데 살고기로 적혀 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 메뉴야말로 장군집 최고의 선택이다. 장군집은 돼지 부속구이 집이었는데, 부속이란 살코기를 발라 낸 내장, 껍데기 등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즉 곱창, 막창, 껍데기를 비롯해서 염통, 호드기, 암뽕, 돈알 같은 것들이다. 특이하게 초장에 마늘, 풋고추, 파, 김치를 넣고 지글거릴 때까지 끓여 소스를 만드는데, 청주 고깃집에서는 이런 방식의 소스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민들레 대포라는 술을 시켜 나는 딱 한 잔으로 한 시간 내내 홀짝거렸고, 나머지는 민희에게 따라 주었다. 기념 사진을 찍고 본격적으로 먹기에 돌입했다. 막창과 살코기를 다 먹고 껍데기를 구웠는데, 어느 정도 익혔다고 생각해서 반대로 뒤집자마자 엄청난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아주머니에게 들으니 이건 한쪽 방향으로만 구워야 연기도 안 나고 타지도 않는다고 한다. 뭐 원래 옆 테이블이 잘 안 보이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낸 연기는 별로 티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같은 사람은 가게 여기저기에 있어서 다들 불길이 불판 위로 30cm씩 치솟아 올랐으니까.
 
한 접시를 다 먹어 가자 배가 적당히 차서, 음식 외의 것에도 관심을 갖기로 했다. 메뉴판을 읽어 보았다. 나는 항상 호기심이 모든 것을 앞선다. 호기심을 충족시키면 그것은 그대로 경험이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것의 좋고 나쁨을 명확하게(그것도 잘난 척하며) 이야기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길은 험난하다. 어쨌든 도무지 알 수 없는 용어들이 적힌 메뉴판은 왕성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먹어 보고 남들에게 잘난 척하며 맛을 알려 주리라! 아주머니한테 처음 보는 메뉴에 대해 물어 봤다. '호드기, 암뽕, 돈알, 꼬리'였는데, '호드기'는 '식도'라고 한다. '암뽕'은 맛집 카페에서 누가 맛있다는 식으로 써 놓아서 나름 기대를 한 부위인데 아주머니는 "암뽕이 뭐예요?"라는 질문에 "애기집."이라고 대답했다. 애기집이 뭔 소린지 몰라 너댓 번을 되물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암퇘지가 새끼를 뱄을 때 돼지새끼가 들어 있는 부분'인가 보다. 아주머니의 인내심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혹시 내가 가는귀가 먹었는지 의심스러울 민희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단어여서 그 의미가 퍼뜩 떠오르지 않은 것이라고 핑계를 대 놓겠다. '돈알'은 짐작은 했지만(돼지에 알이 있어봤자 눈 아니면 거시기일 것이 뻔하므로) '암퇘지에게는 없는 수퇘지의 일부'였다. 아주머니가 "아가씨 있는 데서 자꾸 물어."라고 하면서 내게 귓속말로 알려 주었다. 사실 가장 궁금한 것은 '꼬리'였는데, 돼지꼬리는 굳이 하이킥의 돼지꼬리 땡땡을 말하지 않더라도 무성의하게 동글동글 말려 있는 가느다란 녀석 아닌가. 고기가 붙어 있을 것 같지 않은 그 부위가 대체 어떻게 식탁에 올라온다는 거지? 아무튼 호기심을 달래기 위해 '염통, 호드기, 암뽕'을 조금씩만 달라고 했다. 이때 처음에 민희가 "모듬은 맛 없는 부위도 같이 나와요."라고 한 것을 떠올려서 한번만 더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이후의 재난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염통은 쫄깃쫄깃한 맛이 전혀 없었고(마치 순대에 함께 나오는 간을 씹는 느낌), 호드기는 굽기 전의 말린 오징어보다 질기고 딱딱했으며, 암뽕은 맛집 카페의 댓글을 보고 기대한 바와 달리 툭툭 끊어지는 식감이었다. 막창, 껍데기, 살코기로 흐뭇해진 기분을 한방에 날려 보내는 맛이었다. 장군집을 나오며 민희에게 '장군집 선배인 민희 말을 듣지 않은 게 에러'라고 했는데, 염통, 호드기, 암뽕이 나에게 행한 것은 그야말로 테러였다. 차라리 장금이처럼 미각을 잃고 싶었다. 하긴 미각과 식감은 다른 건가? 아무튼 기억하자. 장군집에서는 막창, 껍데기, 살고기다(살코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설마 살고기가 살코기와 다른 특정 부위는 아니겠지?).

장군집을 나와 충북대 앞에 있다는 떡볶이집을 찾아 보았다. 민희의 설명에 따르면 청주는 대전의 짧고 굵은 쌀떡볶이와 달리 '가늘고 길며 찰기는 약간 덜한 떡볶이'가 대세라고 한다. 민희 친구가 예전에 대전식의 쌀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온 청주 시내를 돌았는데, 기어이 딱 한 곳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다 지렁이 모양 떡볶이인가 하는 그런 떡볶이라고 한다. 직접 신기한 떡볶이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불가능했다. 민희가 소개하려 했던 곳은 짱맛나인지 짱만나인지 하는 곳이었는데, 아무래도 그 자리에 던킨 도넛이 들어서 있는 듯했다. 그 앞에 차를 세워 두고 민희 친구가 살았다던 늘푸른집이라는 곳에 가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영미하고 유미는 자꾸 폰을 뺏어가서 사진을 지워."라는 나의 말에 민희는 "전 포기했어요."라고 했으니, 앞으로 내 폰에는 민희 사진이 잔뜩 들어찰 예정이다. 늘푸른집 바로 옆이 멀티플렉스라 들어가 오락실 농구와 에어 하키를 했다. 오락실 농구는 대전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나의 패배였고(38-137), 에어 하키는 민희가 넣은 것이 점수 처리되지 않는 편파판정 속에 내가 승리했다. 땀흘려 운동(약 5분)한 뒤에는 뭐라도 마셔 주어야 하는 법, 3층인가 4층인가에 있는 커피집에 들어가 아메리카노와 바닐라 쉐이크, 티라미슈 케이크를 먹었다. 견문이 좁긴 하지만 내가 본 커피집 중에서 가장 넓은 곳이었다. 나오면서 매장에 비치된 컴퓨터로 짱맛나인지 짱만나인지 하는 떡볶이집을 검색해 보았다. 네이버 지식인에 "임신했는데 짱맛나 떡볶이가 먹고 싶어요. 지금은 그 자리에 던킨이 있던데, 떡볶이집 어디로 옮겼나요?"라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이 있었다. "제 친구가 거기서 일했었는데, 사장님이 가게를 접으며 이젠 장사를 안 하겠다고 했대요."라니 질문 올린 임산부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아기가 뱃속부터 욕구불만이겠는데?"라고 중얼거리며 멀티플렉스를 나왔다.

차를 타고 대전으로 출발했을 때에는 이미 날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민희의 노련한 내비에 힘입어 초반에는 잘 찾았으나, 딱 한 군데에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네이버 지도에 의하면 우회전인데(직진이었나? 헷갈린다) 눈 앞의 표지판에는 좌회전이 서청주IC 방향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미 타고 있는 차선대로 좌회전을 하고서야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이상 표지판에 서청주IC 방향 설명이 없었던 것이다. 순후가 항상 하는 말이지만, '그러라고 있는 것은 그럴 때 써먹어야' 한다. 사고가 나면 보험회사에 연락해서 처리시키는 것이다. 보험회사는 그러라고 있는 거니까. 길을 찾을 때에는 내비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내비는 그러려고 사는 거니까. 물론 내가 준비한 내비는 산 게 아니고, 네이버 지도에서 빠른 길 찾기를 한 종이쪼가리였지만. 아무튼 민희가 그걸 그대로 잘 읽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현정이가 대청댐 가는 길에서 그것이 외길임에도 불구하고 길을 잃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초행길찾기는 참 수준 이하다. 가 본 길은 잘 찾는데 말이다. "와, 대전에 못 가는 거 아냐?"라고 했는데, 대강 동서남북만 파악하며 북서쪽 방향으로 달리다 보니 서청주IC로 가는 길이 뜬금없이 나타났다. 결정적인 것은 고속도로 진입 직후였는데, 동서울 방향과 대전 방향으로 나뉘는 갈림길이 예상보다 빨리 나오는 바람에 생각없이 직진하다 동서울로 갈 뻔했다. "뭐야뭐야뭐야!"를 외치며 오른쪽으로 틀어 겨우 대전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판암IC를 나서자마자 국도 교차로에서 신호등을 빤히 쳐다보며 민희에게 한 말이 "저거 빨간 불이야?"였던 것이다. 가기 전에 이 말을 했다면 아마 광천순대로 차를 돌려야 했을지도 모른다(광천순대로 갔어도 별 불만은 없다).

내일부터는 스터디다. 민희에게 공책과 볼펜을 선물했다. 이번에 3차까지 합격해서 이러이러하게 공부하는 거라고 알려줄 수 있었다면 물론 더 좋았을 테지만……. 며칠이나 잠을 못 자게 했던 망할 넘의 한 문제 1차 4번은 이제 딱히 불만스럽지도 않다. 아직 내가 원하는 자리에 서지 못한 서른셋의 빈털터리지만, 이제는 그렇게 되고 싶어했던 좋은 선배는 될 수 있겠지. 2년 전 내가 공부를 시작한 것은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후배의 고민 때문이었다. 조언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돌아보게 한 것이다. 그날 고민을 말하던 민희에게 올 한 해 답을 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일부터 일 년. 웃는 얼굴로 차에서 내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민희를 보며, 생각한다. 내년에는 다 같이 선생이 되어 평생 존경받는 선배가 되어 보자.


 
 
     껍데기, 막창, 민희, 선배, 스터디, 장군집, 청주
     0   0
이 글의 관련글(트랙백) 주소 ::    http://dongri98.tistory.com/trackback/255 관련글 쓰기

아이디 
비밀번호 
홈페이지 
비밀글   

 

<<이전 | 1 | 2 | 3 | 4 | 5 ... | 84 | 다음>>

Calabi Yau's Blog is powered by Daum